우리 센터 운영위원으로 계시는 한 변호사님은 범죄 가해자 국선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 변호사님은 비록 범죄를 저질렀지만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어 자신의 방어권을 행사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니신다. 그분의 활동을 보고있으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우리 사회가 경제적·사회적 약자를 위해 범죄자라 할지라도 인권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운영하고 있는 국선변호사 제도는 분명 인권국가로서 한 큰 진전이다. 그러나 나는 범죄 가해자도 이렇게 보호를 받고 있는데 범죄 피해자에 대해서는 왜 아무런 지원이 없는지 항상 의아했다. 다행히 2013년 7월부터 여성가족부와 법무부가 함께 성범죄피해자 국선변호사제도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고맙고 반가와 곧바로 성매매피해 아동청소년의 경찰조사과정에서 국선변호사를 선임해주십사 요청했다. 그러나 되돌아온 답변은 아동청소년성범죄피해자가 성폭력피해자가 아니라 성매매 범죄와 관련된 피해이므로 국선변호사제도를 활용할 수 없다는 대답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성매매피해 아동청소년의 경우 대부분이 가출하여 거리에서 생존을 위해 성인 성매수자의 손쉬운 성매매범죄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인지라 자신도 처벌받게 될까봐 수사기관에 신고하지도 못하고 성인 성구매자는 이를 이용해 '너도 처벌받는다'며 아동청소년을 지속적으로 성폭행하고 협박, 폭행, 감금 등의 더욱 심각한 범죄를 가하고 있다. 또한 성매매 범죄의 피해자가 된 아동청소년의 경우 부모 등 보호자의 보호를 받지 못할 경우가 많을 뿐 아니라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도 모른 체, 자신이 당한 피해 사실을 증명할 수도 자신을 변호할 논리조차도 갖고 있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여 사실상 변호인의 조력이 더욱 절실한 피해 대상이다. 그러나 현행 피해자 국선변호사제도는 십대 성범죄피해자라 하더라도 성폭력 피해자에 한정돼 있어 이런 아동청소년들은 변호인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던 중 정말 심각한 상황이 벌어졌다.
2014년 6월경, 만 13세를 2개월 지난 한 아이가 모친의 핸드폰을 가지고 나와 놀다가 떨어뜨려 액정이 깨졌다. 엄마에게 야단맞는 것이 두려워 아이는 가출을 결심하고 핸드폰의 친구찾기 앱을 통해 '가출함, 재워줄 사람' 이라는 방을 만들었다. 그리고 한 성인 남성을 만났다. 또래에 비해 지능이 약간 떨어져 학교에서도 자주 왕따 경험이 있던 아이는 갈 곳이 없어 그 남성을 따라 모텔에 가서 성폭행을 당했다. 첫 성경험이었고 너무 무서웠고 혼란스러웠던 아이는 더욱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계속 핸드폰 앱을 통해 친구를 찾았다. 그 후 십여명에 달하는 성인 남성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가출신고가 되어 있어 거의 1주일이 지난 후 아이를 찾았지만 아이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이의 엄마는 거지꼴이 되어 있고 뭔가 이상한 아이를 보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머니는 아이를 데리고 서울의 한 해바라기 아동센터에 성폭력으로 신고한 후 국선변호사 입회하에 성폭력 피해에 대해 진술하였다. 지능이 약간 떨어지는 만 13세 아이가 가출하였다 하지만 그 아이를 만났던 십여명에 달하는 어떤 성인도 아이 부모에게 연락하지 않았고 도리어 이 아이를 성폭행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고 아이를 안심시킨 후 횡설수설하는 아이를 통해 가해자들의 신상을 파악하는 등 증거를 모아 경찰에 제출하기도 했다. 피해자국선변호사와 아동센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사건은 잘 해결될 듯 했다. 아이는 그 일이 있고 난후 극도로 불안해하고 혼란스러워하며 심각한 우울증상을 보였고 급기야 자살시도까지 하였다. 결국 어머니는 아이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켜 치료를 받게 해야 했다. 그러나 잘 해결될 줄 알았던 사건은 이 사건이 성폭력사건이 아니라 성매매사건이므로 아이를 더 이상 지원할 수 없다며 아동센터에서 지원을 중단하여 이 아이의 심리상담을 하던 선생님에 의해 우리 센터에 연계되었다. 아동센터에서도 성폭력 아동만이 지원의 대상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후 12월이 되어 사건은 하나씩 결정이 났다. 총7명의 가해 남성이 특정되어 성폭력 범죄로 조사를 받았지만 각각의 사건이 모두 성매매사건으로 인지되었을 뿐 아니라, 결정적으로 현재까지 3명의 가해자 중 1명만 아동청소년성매매로 기소되었고 나머지 2명은 대가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불기소 처리 되었다. 나머지 4명의 가해자들에게도 동일한 결정이 날 것이다.
만13세를 겨우 2개월 지냈을 뿐인 아이를 강제가 아니라 하여 성폭력이 인정되지 않았지만 대가를 주지않았다 하여 성매매로도 인정되지 않은 것이다. 아이의 모친은 정신을 놓았다. 함께 했던 국선변호사님에게 항고해줄 것을 부탁했지만 변호사님 역시 안타깝지만 자신은 성폭력피해 국선변호사여서 성매매사건으로 결정된 이상 법적 권한이 없어졌기 때문에 항고해 줄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이 사건은 우리 센터의 법률지원단에게 돌아왔다. 현재 우리 센터 법률지원단에서 이 사건을 받아 무혐의 결정된 가해자 2인에 대해 항고를 한 상태이다. 나는 이 사건의 진행을 보면서 이 불쌍한 모녀가 여기저기 도움을 요청하다 모두 규정에 없다는 이유로 도움을 거절당한 후 분노와 좌절 속에서 죽음 같은 극단적인 결단을 해야만 우리 사회가 이들 모녀의 호소에 관심 갖게 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더욱 심각한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 피해자 국선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성매매피해자들에게도 이 제도가 확대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