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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레터 25호) 텔레그램 성착취 피해아동·청소년이 쓴 글
    등록일2021.04.29
    조회수544
  •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20년 가을호 「젠더리뷰」 <십대 여성은 왜 디지털 성범죄에 노출되는가> 조진경 대표 기고문을 읽은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의 글입니다.



    ‘너무 익숙하다’. 위 글을 읽으면서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위 글에 적혀있는 디지털 성범죄 사례들 중 다수의 사례들이 내가 직접 겪었던 일들임에 읽는 도중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나는 그저 호기심에 잠시 빠져들었던 고등학생이었지만 그 짧았던 시간 동안 나는 몇 천 명 아니 몇 만 명의 남성들의 표적이 되었다. 내가 겪었던 그 세계는 하루에도 몇 십 명이 넘는 남자들이 나에게 잠자리를 권유했고 용돈을 주겠다며 만남을 권유했다. 그들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들이지만 내가 ‘고등학생’, ‘여성’ 그리고 나를 ‘성적 대상’으로 여겼기 때문에 나에게 값을 매겼다. 내가 지금까지 온라인상에서 봤던 성범죄들은 대부분 트위터나 익명 채팅에서 시작되었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조차 피해자들 중 다수가 트위터에서부터 텔레그램으로 연결되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일탈계’를 접한 여성들은 자신의 신체나 정보를 직접 게시하는 만큼 성범죄의 표적이 되기 쉬웠다. 초등학생들부터 성인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 속에서 하루에도 셀 수 없을 만큼의 성범죄들이 일어난다. 일탈계에서 이들이 흘리는 정보 하나하나가 가해자들에겐 먹잇감이 되고 올리는 사진 하나하나가 이들을 끌어내릴 방법이 될 수 있다.


    나는 돈이 필요했던 것도 아니었고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같이 대화할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니었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익명의 일탈 세계에 발을 내밀었던 그 순간부터 너무나도 많았던 남성들의 애정 행세에 나는 점점 누군지도 알 수 없는 그들에게 애정을 갈구하게 되었다. 성적인 만남을 원하는 이들은 남성의 비율이 여성보다 월등히 많았고 다수의 남성들이 내게 접근해왔다. 매일 수많은 거짓된 달콤한 말들을 듣게 되며 모두가 날 위하는 것처럼 말했고 그에 속아 넘어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나의 얼굴도 모르는 채 나를 사랑 한다 만나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메시지를 보낸 남성들이 내게는 꽤 자극적이었다. 사진 하나를 업로드하면 한 시간 만에 백 명 이상의 남성들이 관심을 보인다. 그렇게 공개 게시글로 올린 사진은 유포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기서부터 나는 많은 이들의 표적이 된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트들에 내가 업로드하였던 사진들이 올라와 있다. 무섭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얼굴’이 나오지 않은 사진들이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이곳에서 나는 아무런 정보도 흘리지 않았고 아무도 나를 알 수 없다고 그렇게 완벽하게 숨겼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내게 만남을 요구한다면 무시하면 될 것이고 내가 나의 개인 정보를 이곳에 남기지 않는다면 나는 성범죄 피해자가 되지 않을 거라고, 뉴스 기사에 쓰인 성범죄 사례들은 나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나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약점만 많은 사냥감과 같았고 그렇게 기사에서만 봐왔던 일들이 나에게 일어났다.


    물론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들에 십대 여성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사이버 세계에서 목격하였던 피해자들 중 ‘십대’와 ‘여성’은 유독 많았다. 내가 생각하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의 심각한 문제점들 중 하나는 많은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알리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성범죄들도 마찬가지지만 현실이 아닌 디지털 세계에서 자신이 겪은 피해 사실을 알리는 일은 쉽지 않다. 또한 디지털에서 현실까지 이어지게 되어 더욱 큰 피해를 입는 일도 많다. 나는 그 속에서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신고하지는 못한 채 자신이 겪은 일들을 써놓은 글들을 종종 목격하곤 했다. 글에는 도저히 사람이 할 짓이라고 납득할 수 없는 피해 사실들이 적혀있다. 하지만 그들은 이를 신고하지 못한 채 글로나마 자신의 이 사실들을 알렸다. 이런 글들을 목격하게 될 때면 이들 중 몇 명이나 피해 사실을 신고 할 수 있을지 고민했었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숨어있는 이 현실은 언제쯤이면 바뀔 수 있을까.
    아직 이 사회에서는 피해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나 또한 이러한 이유로 처음에는 내가 겪은 일들을 풀어내지 못하였다. 많은 비난들이 두려웠고 나 자신이 먼저 빌미를 제공했다고 생각했고 내가 저지른 잘못도 있으니 쉽게 소리를 낼 수는 없었다. 피해 사실을 알리려면 내가 숨기고 싶었던 것들을 털어낼 용기가 있어야 했다. 내가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신고하게 된다면 그와 동시에 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계속해서 모든 게 내 잘못이라고 자책하며 참아야 했다. 그만큼, 현실적으로 피해자에게 신고는 당연하지만 동시에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다시 용기를 내어 세상에 걸어 나와 보니 그제야 내가 그저 도움이 필요했던 피해자였던 것이 눈에 보였다.


    그렇다면 디지털 세대에서 성장하고 있는 십대들이 성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대책이 있을까? 디지털 성범죄 예방이라고 하며 학교에서는 강사가 강연을 하기도 했고 동영상을 틀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매번 뻔한 이야기들만 반복됐었다. “자신의 신체 사진을 인터넷에 게시하지 마세요.”, “낯선 사람과 채팅을 하면 안 돼요.”, “인터넷에서 알게 된 사람을 만나면 위험해요”. 하지 말라고만 말한다면 누가 그 말을 새겨듣겠는가? 또한 그 어디서도 점점 발전해 가는 다양한 범죄 사례들과 대처 방법에 대해 설명을 들을 방법이 없었다. 디지털 성범죄를 직접 겪게 되었을 때에는 어느 기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 어떻게 신고해야 하는지 2차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던 그땐 불안에만 떨고 있어야 했다. 내가 보기엔 아직 디지털 세계에서 십대들이 성범죄에 노출되었을 때 보호해 줄 만한 확실한 방법이 없다. 그리고 십대들은 디지털 성범죄를 당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대처 방법을 어디서도 배우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나에게 십대들의 디지털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방법을 묻는다면 확실한 대답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흔히들 사용하는 sns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채팅 어플로도 성범죄에 노출되기 매우 쉽다. 그렇다고 정말 십대를 보호하기 위해 sns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고 할 수도 없다. 익명으로 접근하는 만큼 이들을 보호하기도 쉽지 않고 예방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예방만이 아닌 대처 방법에도 초점을 두었으면 한다. 물론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면 얼마나 다행인가.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디지털 성범죄가 일어난 후에 있어서 미숙하다는 생각이 든다. ‘도둑이 들었을 땐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이처럼 나는 ‘디지털 성범죄를 당했을 땐 어느 기관이 나를 도와줄 수 있고, 어떤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이 도움이 되고, 피해자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등이 십대들의 성장 속에서 당연함이 되어 우리 십대들을 보다 더 확실하게 지켜줄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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