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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민보] “n번방 이후 성 착취 현장 달라지지 않았다”
    등록일2020.05.22
    조회수68
  • 20년째 성 착취 현장 지키고 있는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을 접한 국민 대다수는 ‘어떻게 이런 극악무도한 범죄가 있냐’라며 치를 떨었다. 반면 성 착취 현장에 오래 있던 활동가들은 ‘터질 게 터졌다’라고 입을 모았다. 지금껏 방치됐던 수많은 피해를 토대로 공고해진 범죄자들의 네트워크가 범죄를 발전시켰다는 취지다.
    특히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에게 이 사건은 전혀 새롭지 않다. 판박이 같은 ‘채팅앱’ 성 착취에서 수년간 아동·청소년들을 구조·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적 영상물을 손에 쥔 가해자가 ‘유포 협박’하며 점점 높은 수위의 촬영물을 강요하고, 결국 성폭행·성매매 강요 알선까지 이르는 성 착취 과정은 2017년부터 현장에서 발견된 특징이었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십대여성인권센터


    “텔레그램 사건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에요. 채팅앱에서 시작된 성 착취의 역사성을 기반으로 하죠. 가해자들은 텔레그램이란 플랫폼으로 이동한 것뿐이에요. 채팅앱 기반 성 착취가 문제로 대두된 2015년에 그들을 막았더라면 이렇게 기가 막힌 성 착취범들이 자신만만하며 여기까지 안 왔을 겁니다”
    텔레그램 사건 이후 현장에서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고 조 대표는 지적했다. “다크웹, 텔레그램 비밀방만 문제가 아니에요. SNS·유튜브 등 아무나 쉽게 들어갈 수 있는 모든 온라인 매체에서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이 유포·판매되고 있어요. 텔레그램 사건의 바닥이 그대로 있는 거죠. 온라인이 끝이 아니에요. 오프라인에서 성매매 산업과 함께 발전하고 있어요”
    조 대표가 성 착취 현장을 지킨 지 벌써 20년째다. 성인 성매매 여성을 지원하면서 그는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져서 다시 시작할 이유가 없어진 이들을 더 빨리 만났더라면”하는 아쉬움을 느꼈다. 2012년 십대여성인권센터 설립을 통해 성 착취 피해 아동·청소년들을 구조하고 회복· 자립까지 지원하는 통합 시스템을 국내 최초로 구축한 이유다.
    성 산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신학도가 베테랑 성매매 활동가가 되기까지 조 대표의 발자국을 따라가니 한국사회 반성매매 운동의 역사가 그려졌다. 성 착취 피해 여성들이 잘 사는 모습을 보기 위해 현장을 떠날 수 없다는 조 대표를 지난 14일 만났다.


    성매매 여성이 범죄자라고?
    “최악의 성 착취는 성매매다”
    “성매매 낙인은 가부장제의 여성 통제”


    최악의 성 착취는 성매매라고 조 대표는 강조했다. 그는 “가부장제를 지탱하는 성매매는 사실상 여성매매”라며 성매매 여성을 범죄자로 보는 시선에 대해 “복합적으로 얽힌 한 사람의 삶을 피해와 자발로 구분할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그는 성인을 지원하던 시절 만났던 한 여성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6일 오후 서울 서울 종로구 수송동 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제1338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앞서 열린 제2회 길원옥 여성평화상 시상식에서 수상자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가 수상 소감을 전하고 있다. 오른족은 길원옥 할머니. 2018.06.06.ⓒ뉴시스


    보육원에서 자란 A 씨는 18살까지 원장 집에서 식모로 살았다. 원장은 학교도 보내주지 않았고, 월급 한 푼 주지 않았다. 도망쳐 나온 A 씨가 ‘초보자 환영 월 200만 원’이라는 문구에 이끌려 간 곳은 성매매 집결지였다. 이상함을 감지했을 때 소개업자는 이미 선불금을 받아간 상태였다. 업주는 보내달라고 사정하는 A 씨를 지하실에 가두고 집단성폭행을 했다. 이제 ‘끝’이라고 생각한 A 씨는 10년 동안 업소를 전전했다.


    그는 ‘에이스’가 됐다. 돈만 주면 뭐든 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별명이다. 건강은 나빠질 때로 나빠져 3일 일하고 4일 쉬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병원 갈 생각은 꿈도 못 꿨다. 빚을 떼먹고 도망갈까 봐 집결지에선 ‘주사 이모’의 포도당이 만병통치약이다. 하루는 바늘을 꽂자 피가 역류했다. 하도 주사를 맞아 핏줄이 딱딱해진 것이다. 그는 성매매 여성 지원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얼굴이 너무 까매서 에이즈에 걸린 줄 알았어요” 조 대표는 A 씨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쉼터에 간 그는 잘 적응하지 못했다. 학교를 안 다녀서 다른 일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어느 날 A 씨는 시집간다며 쉼터를 떠났다. 고향에서 알고 지내던 남자라고 했다. 조 대표는 그가 행복하게 살길 바랐다.


    얼마 뒤 그가 전화를 걸어왔다. “자살시도를 해 온몸에서 피가 나니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했어요. 알고 보니 쉼터에서 사는 게 힘들어 채팅에서 만난 남자 집으로 들어간 거였어요. A 씨가 임신했다고 하니 그 남자는 ‘내 애인지 어떻게 아냐’라며 ‘당장 나가라’고 했대요. 그래서 남자가 보는 앞에서 온몸에 자해한 거죠”


    당시 임신 8개월이었던 A 씨는 임신중절을 고집했다. “차라리 입양하자고 했더니, 부모 없이 자신처럼 살게 할 거면 죽이는 게 낫다고 하더라고요. 약물중독이었던 A 씨는 마취도 안 된 상태에서 생살을 찢어 수술했어요”


    쉼터로 돌아온 A 씨는 또다시 쉼터를 나가겠다고 했다. 이번엔 취업을 핑계 삼았다. “사실대로 말하라고 붙잡으니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겠대요. 다시 시작할 마음도 없고, 무언가를 스스로 할 자신도 없다면서요. 왜 일어날 생각을 안 하고 주저앉아있냐고, 다시 그 일을 시작하면 정말 죽는다고 말했지만 결국 떠났어요”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가 7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개최된 제1회 인권교육 간부 세미나에서 법무부 간부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공간에서의 아동·청소년 성착취 실태와 대책’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2020.05.07.ⓒ법무부


    조 대표는 A 씨가 피해자인지, 성 노동자인지 물었다. “이 사람이 사기당해서 인신매매로 강간당했을 때 제가 개입했다면 그는 완전한 피해자였겠죠. 하지만 나중에 에이스로 승승장구하고, 끝까지 그 일을 하겠다고 했으니 성 노동자로 볼 수 있는 걸까요? 성 노동 담론은 성매매가 여성의 일인 것처럼, 여성에게 섹스 해방인 것처럼 현혹하지만, 가부장제를 강화하고 성 착취를 옹호하는 논리일 뿐이에요”


    성매매를 합법화한 국가에서 성 노동자 대다수는 여성이라는 점에서 ‘성매매는 여성매매’라고 조 대표는 꼬집었다. “독일은 성매매를 성 노동으로 합법화한 법을 제정한 지 20년이 됐어요. 성 노동이 섹스를 파는 거라면 여성이 팔고 남성이 사는 성별 분업이 이뤄지면 안 되잖아요. 독일은 2018년부터 성 노동자를 등록시키고 있는데, 제가 방문했던 한 주는 약 200명의 성 노동자 중 남자가 한 명도 없었어요”


    성매매 여성 중 돈을 모으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조 대표는 말했다. 쉽게 많은 돈을 번다는 통념과 정반대였다. “그들도 섹스를 통해 돈 버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모르는 사람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 돈을 벌었다는 게 만족스러운 일은 아니잖아요. 정서적으로 수치스러움을 느끼는 거죠. 그러니 돈을 모으지 않고 다 써버려요”


    “성매매는 섹스가 아니라 수치와 모욕을 파는 행위에요. 성 구매자가 섹스만 하기 위해 돈을 낼까요? 자기가 피땀 흘려서 번 돈인데 허투루 쓰기 싫겠죠. 큰돈을 주는 만큼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해주길 바라고, 자신은 왕이 되는 거예요. 어린 여성이나 변태적 행위 등을 원하는 것도 같은 이유죠. 일반적인 걸 기대하고 돈 쓸 사람이 어딨겠어요”
    조 대표는 ‘낙인’이 성매매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집에서 매 맞는 여성의 시각에서 성매매 여성에 대한 낙인이 없다면 참고 살 이유가 있을까요? 여성을 가정에 묶어두기 위해 가정 안의 여성과 성매매 여성을 구별해 등급을 나눈 거죠. 성매매에 대한 낙인은 가부장제의 여성 통제 수단이에요”
    “이 때문에 성매매에 대한 낙인은 없어지지 않을 거예요. 가부장제 사회에서 너무 필요로 하는 것이니까요. 성매매를 성차별에 근거한 최악의 성 착취로 보는 이유기도 해요. 성매매는 어떤 말로도 좋게 포장할 수 없어요. 절대로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십대여성인권센터


    1992년 고 윤금이 씨 살해사건부터
    2020년 텔레그램 성 착취사건까지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분노 때문에 현장에 남아


    여성운동에 발을 디딘 순간 성 산업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고 조 대표는 말했다.
    신학대학원에서 여성 신학을 전공한 그가 만난 첫 번째 성매매 여성은 윤금이 씨였다. 기지촌 여성인 윤 씨는 1992년 10월 28일 주한미군 마클 이병에게 살해당했다. 윤 씨의 주검은 처참했다. 그의 자궁에 맥주병 2개가 있었고, 음부엔 콜라병 1개가 박혀 있었다. 항문에는 직장까지 27cm가량 우산대가 꽂혀 있었다. 전신엔 흰색 가루세제가 뿌려져 있었다.
    그러나 마클 이병은 구속되지 않았다. 당시 SOFA(한·미행정협정) 규정에 따라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될 때까지 한국 정부가 가해 미군의 신병을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주한미군의 윤금이 씨 살해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꾸려지자 24살이었던 조 대표도 참여했다. 이 사건은 SOFA 개정 운동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세상에 이렇게 끔찍하고 비참한 죽음이 있을까, 한 존재가 세상에 왔는데 이렇게까지 처참하게 최후를 맞을 수 있을까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당시 기지촌 여성 살해사건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최악이었죠. 대책위원장이 끔찍한 현실에 고개를 돌리지 말라며 살해 현장 사진을 한 시간 동안 보라고 했는데, 너무 역겨웠어요”
    “여성의 몸이 남성사회를 유지하는 토대라는 사실이 충격적이었어요. 한 여성의 죽음에 정치, 외교, 평화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얽혀있었어요. 한국은 분단을 유지하기 위해 미군에게 주둔을 대가로 여성을 준 셈이죠. 이들은 여성을 거래하고 공유하면서 가부장제 네트워크를 공고히 했어요. 성매매는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는 점을 배웠어요”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십대여성인권센터


    인권운동을 하던 조 대표가 여성운동에 뛰어든 계기는 당시 운동진영의 ‘반여성주의’였다. “기독교 인권단체 간사로 정리해고를 당한 노동자와 기업의 단체협상에 참여하고 있었어요. 하루는 노동자 측과 사 측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는데, 회사 건물에서 노동자들을 찍고 있는 여성을 보고 노동자들이 ‘구멍을 찢어버린다’ 등 성적인 욕설을 했어요. 그걸 들으니까 갑자기 확 돌았어요. 이들에게 언젠간 나도 그렇게 보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성매매 여성들을 만나게 된 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기생관광 운동을 조직한 한국교회여성연합회에서 활동하면서부터다. 당시 기지촌에 국내 여성 대신 이주 여성들이 유입되면서 인권 침해가 더 심각해졌다. 그는 외국인 여성 상담소와 함께 IMF 사태 이후 가정해체로 인해 성 산업에 유입된 청소년들을 위한 쉼터 담당자가 됐다.
    조 대표는 2002년 국내 최초로 ‘기지촌 이주 여성 인권실태’를 조사해 발표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미선이 효순이 사건 등으로 생긴 주한미군 통금 시간 때문에 영업에 차질을 빚던 기지촌 업주들에게 인권실태를 조사한다는 이들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조사원들이 수차례 신변의 위협을 당했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같은 해 필리핀 소녀 강간 사건을 지원하면서 조 대표는 국가가 성매매를 주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15세 필리핀 소녀가 25세 여권위조로 이태원에 외국인 댄서로 왔다가 한국인 매니저에게 성폭행당한 사건이 있었다. 필리핀 소녀가 한국 성 산업에 유입되기까지 걸렸던 시간은 단 2주였다. 기지촌 실태조사를 도와줄 필리핀 사람이 오는 데는 여성가족부 장관의 초청장으로도 6개월이 걸렸다.

    “국가의 개입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성 착취 아이들 데리고 나오던 날
    히어로가 된 것 같았어요”


    이듬해부터 조 대표는 본격적으로 반성매매 운동을 시작했다. “필리핀 소녀 사건이나 기지촌 실태조사를 하면서 관련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저도 무서워서 망설였었죠” 성매매 여성을 위한 쉼터의 연대체였던 ‘성매매근절을 위한 한소리회’ 사무국장으로 출근한 첫날부터 순탄치 않은 일들이 벌어졌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가 11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YWCA연합회 회관에서 열린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성매매를 알선·유인하는 어플리케이션 운영자 고소·고발 기자회견에서 고발 증거내용을 들어보이고 있다. 2016.10.11.ⓒ뉴시스


    착신을 풀자마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일주일 전 가출한 딸을 찾아달라는 아버지였다. 어제 딸에게 전화가 왔는데 주변에 시끄러운 소리만 나더니 끊겼다고 했다. 경찰도 못 찾는다고 손사래 친 일이었다. 단서는 성남에 있다는 사실과 걸려온 전화번호뿐. 조 대표는 찜찜한 마음에 성남 여성단체에 도움을 청했고, 집결지가 있던 중동의 경찰관을 소개받았다.


    다음날 딸을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구청에서 집결지 업주들에게 종업원 명부를 등록하게 해 강제로 성병 검진을 하고 있었던 탓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성매매는 불법이라더니 황당했죠. 명부까지 관리했으면 동참한 거 아닌가요? 국가가 포주였던 거죠”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경찰서에 온 딸이 자신과 함께 생활한 지체장애 4급 여성이 업주에게 학대당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젓가락을 불에 달궈 몸을 지지고, 머리를 아무렇게나 자르고, 비누를 신문지에서 싸서 스타킹에 넣어 때리고, 똥물을 먹이는 등의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이 조사 결과 사실로 드러나면서 가해자는 인정했지만, 피해자가 부인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피해자의 마음을 돌려달라며 경찰에서 연락이 왔어요. 출근 둘째 날에 성남까지 내려갔죠. 피해자는 마담이 고마운 사람이라고만 말했어요.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는데, 왜 사실대로 말을 안 하는지 이해가 안 갔어요. 참고 참다가 꺼이꺼이 울면서 피해자에게 ‘왜 그러냐. 그냥 말해라. 갈 곳이 없어서 그런 거라면 함께 쉼터에 가자’고 말했어요. 처음 보는 사람이 자기 얘길 듣고 너무 우니까, 이 사람이 잠깐 쉬더니 사실대로 말했어요”


    “그 사람들이 18, 19살이었는데, 같이 하룻밤 자고 세 번째 여성까지 데리고 나왔어요. 아이들과 함께 나오는데 제가 히어로가 된 느낌이 들더라고요. 제가 다른 사람에게 이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놀라웠어요”
    “여성들이 잘 사는 게 보고 싶어서”
    아동·청소년 성 착취 막는 문지기
    “성매매 유입 아동·청소년은 모두 피해자”


    2000년에 이어 2002년 군산 집결지 화재 참사로 여성들이 집단 사망하면서 윤락행위방지법을 폐지하고 성매매방지법을 제정하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조 대표 역시 이에 참여했다. 초기 성매매방지법은 성 착취 피해자들을 처벌하지 않는 방향이었는데, 2004년 통과된 법은 피해자 조항을 신설한 뒤 이른바 ‘자발적’인 성매매자와 성 구매자를 모두 처벌하도록 후퇴했다.


    조 대표는 2003년 개소한 ‘다시함께센터’를 바탕으로 성매매방지법이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활동했다. 성매매 지원사업에 대한 선례가 없었던 탓에 하나부터 열까지 조 대표가 센터를 만들어갔다. 3년간 집에 들어간 적이 없을 정도였다. 업주들을 상대로 소송에 나서면 백전백승이었다. “성매매 현장을 볼 때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었어요. 그 분노 때문에 현장에 있게 됐죠”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십대여성인권센터
    “업주 상대 소송에서 이기는 것도 행복한 경험이었지만, 여성들이 제대로 잘 사는 게 보고 싶었어요. 대부분 성인은 너덜너덜해질 때 저흴 찾아오니까 다시 시작해야 할 동기가 없는 거예요. 먹고 살려고 끝없이 자신을 버리고 학대하는 과정에서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거죠. 그러니 여성들이 자꾸 성매매로 돌아가 더 큰 빚을 안고 돌아왔어요. 당시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었죠”


    업주들, 성매매 여성들로부터 무차별 공격까지 이어지자 조 대표는 이민을 결심했다. 그러나 외국에서도 두고 왔던 현장들 생각뿐이었다. 도망왔다는 부끄러움과 자책, 미련 때문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아동·청소년의 성매매 유입을 막는 문지기 역할을 하면서 당사자 운동을 지원하기로 마음먹었다.


    2011년 사이버또래상담실로 시작한 십대여성인권센터는 아동·청소년의 성 착취 문제를 통합적으로 다루는 국내 유일 기관이다. 센터는 피해 아동·청소년을 처벌하지 말고 보호하자는 원칙으로 법적·의료적·심리적 지원을 제공하며, 거주·교육·취업까지 통합적으로 지원해 자립을 돕고 있다. 특히 과거 성 착취 피해자들을 사이버 또래 상담사로 훈련하고 고용해 잠재적 피해자를 도우면서 심리적·경제적 자립을 돕는 사업은 센터의 자랑이다.


    최근 성매매 유입 아동·청소년을 처벌하는 대신 피해자로 보호한다는 취지로 아동·청소년성보호법이 개정된 것은 이 같은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처벌조항은 아동·청소년이 성 구매자를 신고할 수 없도록 해 성 착취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조 대표는 “여성 인권에 있어 중요한 패러다임 전환에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기사날짜: 2020.05.20

    출처: 민중의소리

    https://www.vop.co.kr/A0000148907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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