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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빠와 딸, 다른 세대의 시각으로 본 n번방
    등록일2020.05.07
    조회수891
  • 아빠와 딸, 다른 세대의 시각으로 본 n번방
    ‘부모에게 알리겠다’는 성착취 가해자들의 말은 어떻게 해서 피해자를 협박하는 말이 됐을까. 부모와 자녀 세대는 그 원인과 해법을 각각 어떻게 보고 있을까. 경향신문은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아버지들의 모임인 ‘아빠페미’와 청소년페미니즘단체 ‘위티’ 등의 도움을 받아 50대 남성과 10~20대 여성 각각 두 명을 인터뷰했다. 

    아빠와 딸은 기존 디지털 성폭력에 비교해 n번방 사건을 이해하는 방식에서 차이를 보였지만, 재발을 막기 위해 제대로 된 처벌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자녀가 피해를 입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는 부모들을 위해 전문가 제언도 함께 소개한다.


    ■아빠의 시각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1967년생 이종훈씨가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접하고 처음 든 생각이다. 직장 동료나 친구들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박사방 운영자인 조주빈이나 공범들을 ‘악마’로 부르며, 이들의 가학적인 범행에 혀를 내둘렀다.

    이들에게 n번방 사건은 기존 성범죄와는 다른 차원의 범죄였다. ‘음란물’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피해자의 존재가 비로소 드러났기 때문이다. “동영상이 어쩌다 유출됐다는 사건은 들어본 적 있었어도 현실에 존재하는 피해자를 협박해 영상을 찍게 하고 그 영상을 돈을 받고 판매하는 범죄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웠죠.”

    젊은 세대는 조금 다르게 느꼈을까. 이씨의 20대 아들은 다크웹 ‘웰컴투비디오’, 텀블러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등 디지털 성착취물이 유통됐던 플랫폼을 언급하며 “비슷한 사건이 숱하게 많은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접근도 어렵지 않다”고 했다. “돌아보면 ‘빨간마후라’ 영상이나 ‘○○녀 비디오’도 상대방 동의 없이 촬영·유포한 불법영상물이었잖아요. 별로 대수롭지 않게 흘려보낸 사건들이 쌓여 지금의 n번방 사건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범행의 잔혹성을 부각한 성폭력 보도는 부모의 불안을 키운다. 이때 부모가 주로 보이는 반응은 잠재적 피해자인 딸의 행동을 통제하는 것이다.

    아빠와 딸, 다른 세대의 시각으로 본 n번방

    “어떻게 저런 일이…처음엔 그저 충격”
    “무섭고, 보호는 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

    “짧은 치마 입지 말아라, 밤 늦게 돌아다니지 말아라. SNS에 이상한 사진 올리지 말아라….”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하는 말이지만, 기저에는 ‘내 자식에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이씨는 “(부모도) 무섭고, 보호는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할지 모르는 것”이라며 “성폭력이 일어나는 사회구조로까지 생각을 확장하지 못하면 ‘너만 조심하면 된다’고 말하기 쉽다”고 했다.

    고등학생 딸이 둘인 홍순성씨 역시 “만약 딸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제 말 때문에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한다는 점을 안다면, 평소 그런 말을 할 부모는 없을 것”이라며 “내 가족도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딸들에게 ‘언제나 너의 편’이라는 믿음을 줘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씨와 홍씨는 서울 마포구 성미산학교 학부모들과 ‘아빠페미’ 활동을 하고 있다. 2년 전 딸들과 선생님 제안으로 시작한 모임으로, 페미니즘 관련 강의를 듣고 ‘성평등 마을 만들기’ 활동을 하고 있다. 남성이기에 100%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변화는 있었다. 

    피해자의 시선에서 성폭력 사건을 보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홍씨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력 사건 때 한 지인이 피해자의 옷차림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며 농담을 했다”며 “옛날 같으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 제 안에서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고 했다. 이씨 역시 “저도 남자라 ‘실수로 저지른 범죄까지 실형을 선고하는 것은 과하지 않나’ 생각이 들 때가 있다”면서도 “성범죄자의 높은 집행유예 선고율을 보며 ‘내가 너무 남성중심적 시각에서 사안을 봤구나’ 되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이씨는 “50~60대 남성들에겐 여성의 정조라는 개념이 여전히 있는 것 같다. 정조가 없는 여성은 ‘지켜줄 필요’가 없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라고 했다.

    n번방 사건 이후 ‘돈을 벌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평소 행실이 문란했다’는 발언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했다. 그는 “성적 욕구를 해소하는 것과 타인을 착취하는 범죄는 다르다. 제대로 처벌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같은 범죄가 또 반복될 것”이라고 했다.


    ■딸의 시각

    정지원씨(18)는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다룬 기사를 끝까지 읽지 못했다. 구매자들이 주고받은 끔찍한 말들, 그 속에서 피해 여성이 받았을 고통이 그대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정씨를 더 힘들게 한 건 이런 대화가 그리 낯설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타인의 신체를 동의 없이 촬영하거나 품평하는 것. 교실이나 남성 또래집단 사이에선 이미 익숙한 ‘문화’였다.

    “저희가 있는 앞에서도 서슴없이 성희롱 발언을 해요. 여자 선생님의 신체 부위를 하나하나 평가한다든가, ‘저 여자 선생님이 남자친구랑 몇년 사귀었다’며 웃는다든가…. 그 말이 어떤 뜻인지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제지하지 않죠. 여성에 대한 폭력을 묵인, 조장하는 분위기는 어디에나 있고, n번방은 그중 한 단면이 드러났을 뿐이라 생각해요.”

    1020세대 여성들에게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는 피부로 느껴지는 감각이다.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나 공범 몇명이 처벌된다고 그 불안이 사라질 순 없다. 정씨는 “평소 페미니즘 이슈에 목소리 내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던 친구들도 n번방 관련 해시태그 운동에는 적극 참여했다”고 밝혔다.

    n번방 사건을 “세상에 없던 일”처럼 대하는 기성세대에도 비판적이다.

    아빠와 딸, 다른 세대의 시각으로 본 n번방

    “세상에 없던 일? 남의 얘기가 아니라고요”
    “딸들은 성에 무지하기를 바라는 이중잣대가 문제”

    청소년 인권단체에서 활동했던 여인서씨(21)는 n번방 사건 보도를 보고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 개탄하는 아버지를 보며 세대 차이를 느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버지도 책임이 있다.” 예상치 못한 딸의 지적에 아버지는 크게 당황했다고 한다. 여씨는 “평소 ‘버닝썬 사건’ 같은 페미니즘 이슈가 있을 때마다 아버지와 자주 이야기를 나눴다”면서도 “n번방 사건에서는 조주빈이나 일부 개인의 문제로 타자화하는 인상을 받았다.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와도 거리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성착취 가해자들의 주요 범행 수법은 ‘부모에게 알리겠다’는 협박이었다. 1020 여성들은 남녀 청소년의 성에 ‘이중잣대’를 들이댄 가정과 사회가 n번방의 토양이 됐다고 말했다.

    “남성 청소년의 성적 발화는 성장기 자연스러운 ‘장난’쯤으로 취급하면서 여성 청소년에게는 성에 무지한 존재로 남기를 강요했다”는 것이다. 정씨가 말했다.

    “한 번은 생리대가 없어 곤란해하는 친구를 위해 ‘생리대 있는 사람 있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 자리에서 남자 선생님이 ‘내가 앞에 있는데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대놓고 할 수 있느냐’고 하시더라고요. 여성 청소년은 생리라는 단어조차 공개된 장소에서 꺼내지 못하는 상황이죠.”

    정씨는 ‘만약 자신이 피해를 당했다면 부모님에게 알렸을 것 같은가’라고 묻자, ‘그러지 못할 것 같다’고 답했다. “왜 그런 사진을 올렸느냐는 말을 들을까 두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이러한 2차 가해 발언에 대해 “여성 청소년들이 안전하게 성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내어주지도 않았으면서 범죄 책임을 피해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했다.

    1020 여성들이 부모세대에 바라는 점은 명확했다. 피해자를 탓하는 어떠한 발언도 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정씨는 “피해자는 끊임없이 자기 잘못을 되묻는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를 탓하는 발언은 그렇지 않아도 힘든 피해자들을 한계 상황으로 몰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부모 외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는 주문도 나왔다.

    여씨는 “성폭력 피해에 대해 부모님에게 선뜻 도움을 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친권자 동의 없이도 수사나 피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혼란스러운 부모들에게…전문가 제언“어떠한 경우에도 ‘네 편에 설 것’이라는 믿음을 줘라”

    내 아이가 디지털 성착취 피해자가 된다면 부모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10여년간 성착취 피해자와 부모들을 만나온 김동심 십대여성인권센터 심리지원단장은 “어떠한 경우에도 ‘네 편에 설 것’이라는 신뢰감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평소 부모들이 성인지 감수성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표면적인 대답은 ‘혼날까봐’지만 더 들어가면 ‘버려질까봐’예요. 아이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믿고 지지해줘야 할 부모까지 자신에게 등돌릴 수 있다는 공포가 커요.”

    김 단장은 부모가 피해 사실을 알게 될까 두려워하는 아이들의 심리를 이렇게 설명했다. 디지털 성착취 가해자들은 피해자의 이런 심리를 이용해 ‘부모에게 알리겠다’는 협박 수법을 주로 이용한다.

    성착취 피해자들 중에는 부모와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부모에게 지속적인 학대를 당했을 수도 있고, 겉으론 평범한 가정처럼 보이지만 ‘정서적 돌봄’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김 단장은 “가정에서 스트레스가 많을수록 온라인에서 친밀하게 접근하는 남성과의 대화 등에 빠져들기 쉽다”며 “스마트폰이 일반화하며 단순 호기심에 유입되는 경우도 늘었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시대”라고 말했다.

    많은 부모들은 가해자를 탓하기보다, 피해자인 아이들을 다그치고 혼내는 편을 선택한다. 

    김 단장은 “부모들은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사진을 보냈다는 사실에 배신감을 호소하고, 심지어 ‘한 번만 더 채팅을 하면 네 인생이 망가질 것’이라는 식으로 협박이나 폭언을 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딸이 피해자가 됐다는 사실을 알고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 부모도 있다. 성폭력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해서기도 하지만, 부모 자신이 심리적으로 아이를 돌볼 여유가 없어서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십대여성인권센터는 부모 상담도 병행하고 있다.

    김 단장은 “피해 사실을 안 뒤에는 ‘부모로서 어떤 경우라도 너를 지지하고 어려움을 같이 해결하겠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며 “이러한 믿음은 단기간에 쌓이지 않는다. 아이들이 안전함을 느끼고 피해 사실을 털어놓으려면 평소 부모들이 ‘성인지적 관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상적 사회라면 아이가 자발적으로 사진을 보냈어도 이를 유도하고 협박한 가해자와 그 일이 일어나게끔 방조한 어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아이에게도 책임이 있다거나, 여자가 성폭력 피해를 입으면 인생이 끝난다는 사고방식을 버리지 않으면 ‘제대로 된 위로’를 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사람이 큰 충격을 받으면 언어 능력이 떨어지거나 신체적으로 얼어붙는 현상이 일어난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인지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피해자들이 ‘더 센 수위의 사진을 보내면 사진을 지워주겠다’는 가해자 지시를 믿는 것도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는 “이를 잘 모르는 부모들은 ‘말을 똑바로 해라’ ‘왜 또 사진을 보냈느냐’며 아이들을 다그치게 된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내 아이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그는 “외상은 누구나 겪을 수 있지만, 대응 방식은 개인이나 사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그 외상을 딛고 성장하지만,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평생 피해자에 머무를 수도 있다”며 “부모와 사회의 지지, 연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사날짜: 2020.05.03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5032150005&code=9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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